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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 기획연재]미국의 오늘을 찾아서 <끝>

수많은 패배자들의 한낱같은 바람과 희망으로 번영을 유지하는 도시 라스베이거스. 그 가장 높은 건물에는 ‘트럼프’의 이름이 선명히 박혀 별처럼 빛난다. 라스베이거스의 전당대회에서도 트럼프는 중심에 서있다. 라스베이거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도시다. 수많은 주민들이 집을 잃었고, 더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환락의 밤거리 네온빛에 비낀 그림자 속 수많은 호텔에서 식당에서 묵묵히 일하던 미국인들 중 상당수는 멕시코 등지에서 건너와 자리잡은 라티노계 주민들이다. 이들 이민자들 상당수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다. 트럼프를 탐욕스럽고 이상을 등진 거악의 아이콘으로 보는 이들 노동자들은 트럼프의 성들이 지배한 탐욕의 도시를 미국 전체로 확대시킬 수 없다고 쑥덕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또다른 많은 이들에게 희망으로 우뚝 서있다. 뉴햄프셔 지역에서 트럼프를 지지하는 10대 자원봉사자 제이슨 포로젝(17)은 트럼프가 주장하는 ‘불법 이민자를 막는 콘크리트 담’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끌려 자원봉사에 나섰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CEO의 모습으로 출연한 리얼리티 쇼 ‘어프렌티스’는 그가 12살부터 즐겨봤던 TV쇼다. 위엄있고 현명하고, 재치있는 트럼프의 이미지는 그가 생각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언젠가 트럼프처럼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 말하는 소년은, 민주당을 지지하는 선생님들, 친척들에게 트럼프 지지를 호소한다. 어른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청소년에게 자신의 믿음과 다르다며 타박하지 않는다. 다양성이 존중 받아야 하는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산층 백인들 사이에서 반이민 정서가 팽배했다는 이야기는 뉴스거리도 아니다. 대학과 연구소들이 가득한 미시건 외곽에서도 그같은 분위기는 쉽게 접할 수 있다. 공화당계 자원봉사들은 열 집을 다니면 아홉 집에서는 “불법이민자는 쫓아내야 한다”, “장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수긍한다고. 최소한 “거리의 수많은 불체자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는 꼴은 절대 보고싶지 않다”는 것이 백인 중산층들 대부분의 솔직한 생각이라고 말한다.. 한 테드 크루즈 지지자는 몇 년 전까지 백인들만 살던 한 아파트의 현재 입주 가정 중 절반이 인도계라고 끔찍해했다. 그는 “아파트 입주자 대부분이 인도에서 온 컴퓨터 전공자들”이라며 “그들 하나하나가 미국 주민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여기서 터를 잡았다고 생각하면 더 소름이 돋는다”고 말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소수의 불평이 아니다. 부동산 재벌 트럼프를 둘러싼 수많은 지지층들의 면면에는 그의 쇼맨십에 열광하는 단순 팬들, 그의 부를 찬미하는 숭배자들, 그의 과격한 주장에 동조하는 급진주의자들, 그가 행하는 파격을 기존 정치인들의 한계를 부술 새로운 존재라고 믿는 정치혐오자들이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들은 ‘대세’로 트럼프를 미국의 지도자로 세우고 있다. 박세용 기자 [email protected]

2016-03-29

[워싱턴포스트 기획연재]미국의 오늘을 찾아서 (3)

메리 왈즈와 헤리 주드 부부는 변호사다. 60대인 그들은 각종 봉사활동과 정치활동에 앞장서는 진보적인 시민들이지만, 분노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을 위대하게 재건설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정치에 참여하고 많은 관심을 갖고 있긴 해도, 우리와 저들을 나누는 극단적인 사상에는 동조하지 않는다. 정당 선거위원회에서 자원봉사하는 그들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 메리 왈즈는 주하원의원으로 재직한 경험이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400명의 주의원으로 구성된 뉴햄프셔 주의회에서 받았던 연봉은 수백불 정도였다. 정치는 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위한 직책이라는 것이 이들 부부의 생각이다. 지금은 클린턴 지지자이지만 주하원의원 재직 당시에는 공화당원이었다. 요즘 공화당원들 사이에서 특히 회자되는 구호는 ‘잃어버린 미국을 찾자’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그냥 이기자는 구호일 것이고, 몇 몇에게는 미국의 강대한 힘을 되찾자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몇 몇에게는 이민자들의 증가와 문화 다양성으로 사라진 미국 특유의 청교도 정신을 되돌리자는 함성일 수도 있다. 메리 왈즈씨가 가장 존경하는 공화당원인 캐런 와드월스는 “미국이 잃어버린 것은 존경심이다. 나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앞으로 되찾아야 할 것은 국민들과 세계인들로부터의 존경심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SNS로 사람들의 목소리와 의견들이 매 초마다 넘쳐나는 시대다. 하지만 그 격은 너무 낮아졌다. 대화와 토론은 감정에 휩싸인다. 제대로 된 생각들은 자극적인 의견에 묻혀 금방 사라진다. 분노하고 비하하는 언어와 생각들이 SNS를 지배한다. 우리는 진정 분노하고 있나? 정치인들은 더이상 좋은 일과 희망 따위를 제대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공포, 불안, 분노로 보통 사람들을 내몰고 있다. 이같은 의견은 뉴햄프셔 대학 기숙사에서도 엿들을 수 있다. 공화당원인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힐러리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CNN 후보 토론을 시청중이다. 학생들은 정치가 흥미로우면서도 실망스러운 드라마 같다고 이야기한다. 진보적인 대학 풍조에 그들 대학생 공화당원들은 이단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이들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성장해 간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젊은 공화당원들은 민주당 토론회를 즐긴다면서 “어떤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 같은 작자를 지지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분노에 이성을 잃었다.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그의 사상과 계획 따위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스스로 풀이했다. 이들은 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의 토론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버니의 열정과 힐러리의 수완에 감탄하기도 한다. “미국인들은 자기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 잘 알지도,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제 생각엔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라고 토론회를 함께 시청한 뉴햄프셔 주하원의원 조 스위니(공)가 말했다. 개인 대 조직, 전체 대 부분의 건전한 대립은 미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이 결과로 다양한 문화와 풍조, 민족과 인종이 모자이크처럼 미국을 이루고 나라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EU라는 큰 틀에서 각 나라의 정체성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 관건인 유럽인들이 보기에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갈등은 유럽의 그것보다 넓고 깊다. 폴 가버씨는 75세다. 올 대선이 어쩌면 그가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투표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화당으로 자랐지만 지금은 열렬한 좌파주의자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 하지만 클린턴이 경선에서 이긴다면 선거에서는 당연히 클린턴을 위해 투표하겠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 8년간 오바마 대통령의 각종 개혁정책의 발목을 잡은 공화당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경선이 가까워 올수록, 유세현장은 공개심리치료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공화당 후보의 유세에도 민주당 후보들의 유세에서도 분노와 개혁을 바라는 사람들의 외침이 들리고 후보들은 때로는 격양된 표정으로, 때로는 천사의 미소로 그들을 이꼴고, 달래며 지지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유세현장을 찾은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대부분 그 곳에 오기 전에 갖고 있었던 후보자들의 호불호를 한 두번의 대면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 분노는 넓고 질문을 크다. 대선이 가까워 질 수록 상처는 벌어지고 감정의 골은 깊어 간다. 박세용 기자

2016-03-25

분노 넘쳐나는 미국 속에서 희망의 끈 놓지않는 시민들

뉴햄프셔 예비경선을 앞둔 버니 샌더스 의원 선거 사무실. 저스틴 타욱(30)이 트럼프 후보의 유세 소식을 시청하고 있다. 작은 은행의 IT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타욱은 버니 샌더스 후보의 월스트리트에 대한 개혁의지와 ‘빅 머니’ 앞에 무기력한 워싱턴 정가를 변혁시키자는 주장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그의 아버지는 25년간 지역 육류포장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은 경제위기 속에 큰 회사에 팔렸다가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일자리를 잃고서 정부의 실직자 직업 교육을 이수한 타욱의 아버지는, 수중모터를 우물에 설치해 주는 작은 회사에 취업했다. 작은 가게에서 일하니 생각도 작아졌다. 타욱은 아버지가 뉴햄프셔의 소도시 두버크의 노동자 계급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다니던 육류가공 공장이 문을 닫았을 때, 타욱은 이것이 이익만을 바라보고 모든 결정을 내리는 기업들의 횡포 때문이라고 직시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기같은 소시민의 삶도 크게 보면 월스트리트 거대 기업들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그저 불법이민자들과 잘못된 무역협정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것이라고 한탄했다. 그런 상황속에 저스틴 타욱은 샌더스 의원과도 같은 ‘진보적인 믿음’을 품기 시작했다. 그 믿음은 어떤 사명감을 갖게 했고 결국 정치적인 행동에 까지 이르게 했다. 그 무렵부터 그는 카운티 의회부터 학교 교육위원 선출까지 가능한 모든 투표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버니 샌더스를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 먹었다. 20대인 니콜라스 허큰베리와 앨리슨 심슨은 열렬한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자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동안 우리는 클린턴 선거 캠프가 보여주는 장밋빛 약속과 위험성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다. 그들의 조직은 정확하고 잘 정비돼 있다. 하지만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선을 위해 봉사했던 그들은 이번 선거에 클린턴을 돕고자 마음먹었다. 클린턴 후보야 말로 오바마 대통령이 이룩한 각종 정책들을 제대로 이어받아 발전시킬 적임자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허큰베리는 “끼워 맞추기식의 선택이지만 클린턴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앨리슨 심슨 양의 클린턴 지지이유는 좀 더 명확하다. 그의 어머니는 10대시절 결혼해 여섯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웠다. 심슨은 “여성들에게 낙태와 같은 선택의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며 클린턴 후보의 여성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들의 권리를 깨닫고 여성인권운동가로 변신한 어머니를 동네 주민들이 “낙태주의자”라며 밀치고 욕하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그 기억은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박혀있다”고 심슨 양은 강조했다. 심슨에게, 허큰베리에게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공동체 의식’이었다. “배경이 어떻든, 누구든지 상관없이 힐러리 클린턴을 돕기 위해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단단히 뭉치고 있어요.”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지지자들은, 클린턴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가장 가능성 높은 후보라는 이미지와 정책, 여성이라는 상 징성에 기대는 비슷한 이유를 가진 수 많은 이들이 뭉치고 있는 것이다. 뉴햄프셔 예비경선을 하루 앞둔 날, 허큰베리씨의 가정에 두 남자가 방문했다. 이들은 터키 이민자들로 무슬림을 믿고 있는 클린턴 지지자들이다. 이스마일 펄사트는 대리석 주방공사를 전문으로 하는 성공한 사업가다. 그는 자신을 터키에서 프로 복서였다고 소개했다. 미국 땅에서 권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 이민왔다는 그에게 미국은 어떤 곳일까?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곳이죠.” 시민권을 따려면 아직 2년이 남았다는 펄사트 씨는 “종교와 인종, 문화적 배경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을 떳떳하고 진솔하게 할 수 있는 참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때 공화당을 지지했던 펄사트 씨는 현재 공화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는 트럼프 후보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트럼프의 이민자 공격에 상처를 받았다. 그가 주장하는 세상은 민주주의 국가 미국과는 거리가 멀다”고 단호히 말했다. 트럼프의 돌풍은 예상외의 예기치 못한 결과물들을 낳고 있다. 펄사트씨와 같은 조용한 이민자들이 정치 활동가로 변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예다. 이 날, 허큰베리 양은 펄사트와 그의 친구에게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선거운동에 대한 방법들을 교육했다. 그들은 위스컨신으로 돌아가 앞으로 클린턴 후보를 위해 동네 가정들을 방문하며 유세를 펼칠 예정이다. 에드워드 메스트 목사(45)는 아이오와 코커스 전날 그의 작은 교회에 “오직 하느님 만이 위대한 미국을 재창조 하실 수 있다”라는 문구를 내걸었다. 그는 공립학교에서 성경이 사라지고 히피들이 자녀들에게 무신론을 가르치던 수십년 전 부터 미국의 정신을 되찾기 위한 전쟁은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대법원 판사들이 낙태를 지지하고 동성간의 결혼을 합법화 시키는 현실을 메스트 목사는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여름,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나왔을 때, 전국 복음주의단체들은 신도들에게 ‘투표에 참가해 정치적 힘을 보여주자’는 메시지를 대대적으로 전달했다. 이에 편승해 텍사스 연방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모든 목사들에 대한 지지 호소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메스트 목사는 이번 선거에서 크루즈 상원의원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메스트 목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도, 인종문제도 아니다. 바로 ‘영혼의 문제’다. 그는 “기독교 정신이 죽어서 모든 문제가 야기됐다. 하느님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전달된다면 갈등은 사라지고 해결방법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개최된 아침. 매스트 목사는 다섯명의 신도들과 커피를 마시며 정치를 주제로 이야기 했다. IT기술자 빅터 모워리(43)는 “동성결혼 합법화는 자칭 진보적인 대법원 판사들 탓”이라고 말한다. 또한 미디어가 평범한 미국인들이 아닌 일부의 주장을 대다수의 바람인 양 왜곡한다고 주장했다. 모워리씨는 “미국을 바꿀 필요는 없다. 단지 옛 모습으로 되돌리면 되는 것”이라고 담담히 말한다. 그는 “가끔식 우리가 대재앙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날 열린 뉴햄프셔 공화당 전당대회에는 4년전과 달리 수많은 당원들이 모습을 보였다. 몬티 알렉산더는 누구를 지지해야 할 지 자신이 없었다. 루비오, 크루즈가 과연 힐러리 클린턴을 이길 수 있을까? 트럼프는 과연 보수주의자로 공화당을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상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15살 난 아들에게 누구에게 투표할 지 물었다. “트럼프요” 아들의속시원한 대답에 따라 알렉산더씨는 투표용지에 T-R-U-M-P라고 적었다. 같은 시각, 민주당 전당대회. 저스틴 타욱씨는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투표중계를 시청하고 있었다. 샌더스 후보가 근소한 차로 앞서는 중이었다. 니콜라스 허큰베리와 앨리슨 심슨 양도 멀지 않은 곳에서 초초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다른 지지자들과 SNS로 상황을 이야기하며 쉴 새없이 바빴다. 분노가 넘쳐나는 선거의 계절에도 기득권세력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이름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생, 자유, 이상향을 찾는 여정 따위로 포장된 정치인들의 대망에, 분노로 가득한 미국인들은 아직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채 과거의 영광과 공평한 미래를 한껏 꿈꾸며 나아가는 중이다. 박세용 기자

2016-03-23

지금 미국에는 거대한 분노의 물결이

2016년 미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는 각 당의 경선에서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민)과 도널드 트럼프 후보(공). 이들의 ‘돌풍’을 계기로, 그 저변에 깔려있는 미국인들의 정서와 민심을 되돌아보는 워싱턴 포스트의 기획특집이 소리없는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에 살아가는 한인으로서 알아야 하는 오늘날의 미국에 대한 이야기다. 워싱턴 중앙일보가 본 기획 시리즈의 원문을 요약 연재한다. 미국에는 분노가 넘쳐난다. 월스트릿에 대해, 무슬림들에 대해, 잘못된 무역협정과 워싱턴 정가를 향해, 무고한 흑인 젊은이를 쏜 경찰들을 향해, 오바마 대통령과 의회의 발목 잡기를 일삼는 공화당을 향해, 정치적 수정론자를 향해, 미시간의 오염 수돗물 사태를 일으킨 위정자들을 향해, 금권정치를 향해, 불법이민자를 향해, 잘 안풀리는 회사생활, 인생의 길을 잃은 절망감을 향해, 구체적이고 혹은 그렇지 않은 각종 분노부터 ‘분노에 대한 분노’까지 오늘날 미국은 온통 분노 투성이다. 대선을 향해 질주하는 각 당의 경선 후보들은 민심의 분노를 수단으로 이용한다. 민심에 가득 찬 분노가 그들의 눈에 띈 것인지, 그들이 이야기하는 갖가지 문구가 대중들에게 분노의 불씨를 옮긴 것인지는 모호하다. 하지만 이 분노로 가득한 민심에, 분노에 편승하는 트럼프와 샌더스 후보의 거대한 약진에 기존의 정치판이 요동치고 있다는 점만은 확실하다. 이제 공화당은 분열됐고 민주당도 분열직전의 상태다. 시간이 갈수록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데올로기는 양 극을 향해서 달리며 멀어지고 있다. 올 대선에 첫 투표를 앞둔 젊은이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할 때 초등학생이었다. 그들의 부모는 리차드 닉슨이 퇴임할 당시 갓난아기였던 세대다. 지난 주, 다인종 젊은이들로 구성된 시위대들은 도널드 트럼프 유세에 모인 군중들과 충돌했다. 미국에서 흔치 않은 선거관련 폭력사태가 50년의 시차를 두고 펼쳐졌다. 50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를 둔 세대들은 이번 대선에서 함께 투표소로 향한다. 지금의 미국을 감싸고 있는 분노의 원인과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실재하는가 아니면 과대포장 된 채 덜 숙성한 망상일 뿐인가?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저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부르짖는 주장들은 새시대를 향한 진정한 외침일까? 하루하루 일상에 충실한 현실속의 국민들의 목소리와 부합하는 것일까? 그 대답을 찾기 위해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전국을 누볐다. 공항 격납고에서의 유세부터 고등학교 체육관의 유세까지 가능한 모든 유세 현장을 찾았다. 대학 동아리부터 변두리 시골 로터리 클럽의 아침식사 자리 등 가능한 모든 곳에서 국민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이상주의와 실용주의에 기반한 갖가지 지혜들이 넘쳐났다. 미국에 대한 이상향, 미국민들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인지를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재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적은 급여 등 각종 경제적인 불안감과 함께, 좋았던 시절에 대한 향수에 묶인 채 미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반면에 희망에 넘치는 많은 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사회가 불황을 극복하고, 고질적인 부패에서 벗어나는 모습에 기쁨을 느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유세장에서 확인되는 모든 ‘분노’의 중심에 도널드 트럼프가 있다. 현대 정치적 함의를 모두 깨부수고, 정치 분석가들의 분석을 날려버리며 거침없는 돌풍을 일으키는 이 남자의 존재는 무엇을 뜻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정치를 혐오한다. 오늘날 스스로 정당 컨벤션에 발걸음 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적 수정주의와 공화당의 말뿐인 정책에 신물이 난 당원들도 대다수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강인함과 시원함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트럼프의 직설적인 화법, 그에게 공격받는 정적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감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동기부여’로 직결된다. 트럼프의 유세장에는 그가 전하는 ‘부의 복음’을 좇는 출세지향적인 지지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분노의 표출’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진 트럼프 유세장은 사실 분노와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와 샌더스는 극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라는 양 극단에 존재하지만, 계층의 분노는 도파민 효과를 통해 후보들에 대한 집중력과 충성심을 높이는 공통적인 용도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월 말,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를 며칠 앞두고 트럼프 후보의 유세장을 찾았다. 이 곳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세릴 크레이머 여사(70)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로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하지만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이 잘못된 정보로 시작된 전쟁에 희생됐다는 점에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크레이머 여사는 오바마 대통령도 이 나라를 도덕적, 경제적 나락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사람들에게 내가 트럼프 지지자인 것을 말하면 깜짝 놀래죠”라고 말하는 크레이머 여사는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들로 구성되어 왔던 역대 정부들이 우리들을 실망시켜 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해요. 지금껏 워싱턴 정치인들이 할 수 있는 방식은 다 해봤잖아요? 이제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 합니다”라며 트럼프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트럼프 캠프 자원봉사자 몬티 알렉산더 씨는 38세의 소프트웨어 판매사원으로 전국총기협회 회원이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재임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갖고있다. 유세장을 함께 찾은 장인 찰리 트로이(68)씨는 이렇게 말한다. “예전에는 집을 갖고 싶다면 일을 하면 됐습니다. 6000불 정도 하던 교외주택은 부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살 수 있었고,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오바마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일에 대한 열정보다는 부자들에 대한 투쟁을 강요합니다. 이것은 나라를 두 편으로 갈라 놓는 일입니다. 항상 부자들을 모든 문제의 근원으로 몰아부쳐 가난한 이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잘못된 짓 입니다” 연단에 등장한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의 30억달러짜리 공군1호기(Air Force One)를 비판하면서 연설을 시작했다. 자신이라면 ‘딜’을 통해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쪽에서 반대시위대들이 구호를 외치자 연단에 있던 트럼프는 “저사람들 끌어내라”고 쏘아 붙인다. 지지자들은 열광한다. 그들은 트럼프의 그런 박력이 미국대통령에게 필요한 ‘강인함’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이긴 적이 한 번이라도 있습니까?” 트럼프가 청중에게 묻는다. “우리는 강하면서도 항상 얻어맞는 덩치 큰 아이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스스로 대답한다. “우리는 이 나라를 다시 강하게 만들 겁니다. 그리고 아주 큰 부자가 되지 않고는 위대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유세장을 찾은 이들은 믿는다. 트럼프는 그들을 위한 후보다. 정치인 때가 묻지 않고, 우리들을 다시 ‘부자’로 만들 진정한 리더라고. 경쾌한 음악이 울려퍼지는 유세장을 나와 그들은 만족한 미소로 그들이 타고 온 트럭에 올라 집으로 향한다.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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